
익숙한 거리에서 길을 잃은 기분
대구 반월당 근처는 솔직히 말하면 눈 감고도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다. 시내라고 하면 항상 동성로 쪽을 떠올리지만, 사실 병원이나 좀 큰 검진센터를 가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반월당역 부근으로 발걸음이 향하게 된다. 최근에 건강검진차 KMI 대구센터가 남산동 효성해링턴플레이스 쪽으로 이전했다는 소식을 듣고 왠지 모를 낯설음을 느꼈다. 늘 가던 자리에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묘하게 위치를 바꾸는 게 나한테는 꽤 큰 일이었다. 예약 시간을 맞추느라 지하철 1, 2호선을 갈아타고 반월당역 밖으로 나왔는데, 익숙한 건물들 사이로 공사 중인 곳들도 보이고 사람이 북적이는 통에 괜히 마음만 급해졌다.
상담 한 번 받기가 왜 이리 복잡하게 느껴질까
사실 성형외과를 알아보러 다닌 건 순전히 눈꺼풀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그냥 피곤하면 눈이 좀 무거운가 보다 싶었는데, 이제는 오후만 되면 눈을 뜨고 있는 게 노동처럼 느껴진다. 주변 친구들이 다들 안검하수 이야기를 하길래 귀가 얇아진 탓도 있다. 반월당 주변 성형외과를 검색해 보면 정말 수십 군데가 나오는데, 막상 상담 예약을 하려니 어디가 정답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한 군데는 원장님이 엄청 꼼꼼하시기로 유명하다는데 대기 시간만 두 시간이 넘는다고 해서 주저하게 됐고, 또 다른 곳은 너무 공장처럼 돌아가는 분위기라는 소문을 들어서 영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결국 그냥 발길 닿는 대로 대형 건물이 몰려 있는 쪽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500만 원이라는 숫자의 무게감
상담을 기다리면서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우연히 기사 하나를 보게 됐다. 다이어트 체험단 광고를 보고 성형외과를 찾았다가 오히려 정신적인 문제까지 겪게 되어 소송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위자료 500만 원 정도가 언급되어 있었는데, 그 글을 읽으니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예쁘게 되고 싶어서 돈을 쓰러 왔는데, 오히려 내 몸과 마음을 내맡겨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니까. 상담 실장님이 건네주는 종이 서류들을 보면서 이게 과연 내 삶을 더 나아지게 할까, 아니면 그냥 귀찮은 일들의 시작일까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들 별거 아니라고 말하지만, 사실 얼굴에 칼을 대거나 레이저를 쏘는 건 그냥 미용실에서 머리 자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무게감이 있다.
대기 시간만 길어지는 오후의 애매함
반월당역 근처의 어느 의원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옆 사람이 받는 시술 비용 이야기를 얼핏 듣게 되었다. 꽤 유명하다는 곳들은 상담비도 따로 받거나, 혹은 대기 시간만 거의 한 시간 반을 넘기기도 했다. 시간은 금이라고들 하는데, 막상 병원 의자에 앉아 있으면 시간은 무의미하게 흘러간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나 싶은 회의감이 들었다. 거울을 보면 눈꺼풀이 처진 게 분명히 보이는데, 또 집에 돌아가서 세수하고 거울 보면 ‘이 정도면 그냥 살 만한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다. 이 변덕스러운 마음 때문에 진료실 문을 열기까지가 제일 힘든 것 같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인데 확신이 없다
비용도 문제다. 10만 원 단위도 아니고, 그렇다고 100만 원 이하로 끝날 일도 아닌 것 같아서 예산 잡기가 참 애매하다. 주상복합 상가 안에 있는 클리닉들은 시설이 깔끔해서 좋아 보였지만, 임대료가 비싼 만큼 수술 비용에 다 녹아들어 있겠지 하는 삐딱한 생각도 든다. 결국은 어디가 제일 잘하는지, 나랑 잘 맞을지 아무도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데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게 제일 피곤하다. 수술을 받고 나서 다시 출근하고,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 지금보다 얼마나 편해질지 상상해 봐도 딱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냥 이 눈꺼풀의 답답함을 조금 참고 사는 게 나을지, 아니면 큰맘 먹고 수술대에 누워야 할지, 오늘도 반월당역을 빠져나오면서 아무런 결론 없이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만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