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골목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오히려 생각이 더 많아졌다

압구정 골목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오히려 생각이 더 많아졌다

화려한 간판들 사이에서 느낀 막연한 피로감

며칠 전 압구정 근처를 지나가다 문득 생각이 나서 평소 눈여겨보던 성형외과 몇 곳을 직접 둘러보고 왔다. 사실 인터넷 어플이나 커뮤니티에서 본 후기들은 이미 너무 익숙했지만, 막상 그 거리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신사역에서 내려서 압구정 로데오까지 걷는 내내 보이는 건 성형외과 간판들뿐이었다. 어떤 곳은 건물 전체가 병원이었고, 어떤 곳은 아주 조용한 빌라촌 한복판에 작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예약 없이 그냥 들어가서 상담받아볼까 하는 생각도 아주 잠깐 들었지만, 막상 건물 로비 앞에 서니 왠지 모를 긴장감 때문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20대 후반이 되고 나니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콤플렉스들이 유독 거울 볼 때마다 더 크게 다가오는 기분이다. 친구들은 요즘 강남역이나 신사역 근처가 잘한다고들 하는데, 정작 가보면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막상 직접 마주한 성형가 거리는 생각보다 훨씬 차갑고 건조했다.

쥬베룩이나 리프팅 같은 단어들이 주는 혼란

상담을 받아보기도 전에 온라인으로 정보를 좀 찾아보려 했는데, 이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마이크로웨이브 리프팅부터 시작해서 요즘은 쥬베룩 프리미엄까지, 새로운 시술 이름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니 머리만 더 복잡해졌다. 논현이나 압구정 일대 피부과에서 이런 시술들을 앞다퉈 도입했다는 광고성 글들을 읽다 보면, 도대체 나한테 뭐가 필요한지 감도 안 잡힌다. 어떤 의사는 상담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고, 어떤 곳은 일단 기계부터 좋은 걸 써야 한다고 한다. 사실 비용도 천차만별이다. 20~30만 원 선에서 해결되는 보톡스 같은 건 쉽게 결정하겠는데, 수술이나 좀 더 큰 피부 개선은 최소 몇 백 단위로 넘어가니까 선뜻 결심이 서지 않는다. 병원 이름 뒤에 붙는 원장님들의 화려한 이력들도 막상 읽어보면 다들 서울대 출신이거나 유명한 학회 소속이라는데, 이게 과연 내 얼굴에 직접적으로 어떤 차이를 만들어낼지 상상하기가 어렵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시스템 안에 들어가는 기분

압구정 거리를 걷다 보면 마치 잘 짜여진 거대한 K-뷰티 산업 현장 안에 내가 덩그러니 놓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영화 ‘압꾸정’에서 마동석이 연기한 인물들이 뛰어다니던 그 화려한 사업의 이면이 사실 이런 상담실들인가 싶기도 하고. 실제로 성형외과 전문의를 만나서 상담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더 기계적이고 비즈니스적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내가 정말로 원해서 하는 수술인지, 아니면 주변에서 다들 하니까 분위기에 휩쓸려서 고민하는 건지 스스로 되묻게 된다. 특히 함몰유두 같은 고민은 남들한테 쉽게 말하기 어려워서 그런지 더 신중해진다. 수술비가 100만 원대인지 200만 원대인지도 중요하지만, 정말 수술 후에 내가 겪을 불편함이나 회복 기간 같은 건 어디서 제대로 들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플이나 후기 게시판에는 다들 잘 됐다는 말뿐이라,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은 오롯이 내 몫으로 남는 것 같다.

대기 시간과 상담의 온도 차이

예전에 지인이 갔던 압구정 근처 병원을 한 곳 가봤는데, 사람이 정말 많았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게 됐다. 다들 어딘가 조금씩은 불안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대에 차 있는 것 같기도 했다. 30분 정도 기다리다가 결국 상담을 예약하고 나오긴 했는데, 막상 원장님을 대면하면 내가 준비한 질문들을 제대로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상담 실장님이 먼저 붙어서 대략적인 견적을 내주는 방식이 나는 여전히 낯설고 불편하다. 이게 무슨 물건 사는 것도 아닌데, 상담 실장과 가격을 흥정하듯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금방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을 것 같다. 정보는 넘쳐나는데 정작 내가 알고 싶은 ‘나한테 이게 정말 필요한가’에 대한 답은 어느 병원에서도 명쾌하게 해주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고민들

지금은 일단 발을 뺐다.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아까 길에서 봤던 사람들의 모습이 계속 잔상처럼 남는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변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또 내일이면 다시 성형외과 홈페이지를 뒤적거릴 나를 상상하니 한숨이 나온다. 돈을 모으는 것보다 마음을 먹는 게 더 어렵다. 아마 이번에도 고민만 하다가 또 몇 달이 지나가겠지. 다른 사람들은 상담 한 번 가보고 바로 날짜 잡는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매번 신중하고 또 겁이 나는 건지. 누군가는 성형이 별거 아니라고 하지만, 내 얼굴에 칼을 대거나 기계를 넣는다는 건 역시 보통 일은 아니다. 내일은 좀 더 차분하게 내가 정말 바꾸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아니면 그냥 내 모습 그대로 지내도 괜찮은 건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결론이 나지 않는 이런 생각들이 때로는 일상보다 더 무겁게 느껴진다.

댓글 3
  •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생각해보니,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뒤에 숨겨진 고민들이 많다는 걸 알 것 같네요.

  • 압구정 거리 지나다보며 많은 병원들을 보니, 스스로에게 '지금까지 왜 이렇게 고민했나' 싶네요.

  •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 계속 떠오르네요. 저도 가끔 그런 생각에 잠기면, 단순히 외모가 아니라 삶의 방향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